테오티우아칸은 메소아메리카의 고대 도시로 현대의 멕시코 계곡에 위치해 있으며, 콜럼버스 시대 이전 아메리카 대륙에 건설된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손꼽히는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가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성기 시절 테오티우아칸은 이집트 파라오의 경이로움에 필적하는 거대한 피라미드로 가득한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으나, 오늘날에는 그 모든 것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테오티우아칸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유적에 남겨진 작은 힌트를 통해 과거에 대한 일부가 밝혀졌습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에 도착해 테오티우아칸을 처음 보았을 때 이미 아즈텍인들은 그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이주시켜 제국의 일부로 삼으려 했지만, 결국 제국을 건설하지는 않았습니다.
테오티우아칸은 아즈텍인보다 1,000년, 마야인이 멕시코에 오기 500년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이 도시를 지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톨텍 문명이 건설했다는 가설이 있었지만, 이 도시는 그들보다 멕시코에 훨씬 더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을 통해 이 도시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도시는 기원전 400년에 폭발한 화산으로부터 용암이 흐르면서 땅속에 새겨진 동굴을 중심으로 건설되었습니다. 동굴을 발견한 사람들은 이 동굴이 성지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그 위에 신전을 세웠으며, 점차 성스러운 동굴을 보러 온 순례자들에 의해 그 주변에 작은 정착촌이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화산이 만든 대도시
이 작은 정착촌은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적 랜드마크가 되었으며, 점차 많은 인구의 유입으로 인해 거대한 도시로 변모해 갔습니다. 그러나 테오티우아칸이 도시로 번성하기 시작할 무렵, 쿠이쿠일코의 화산이 폭발했습니다.
거대한 정착촌이 전멸하고 흩어진 생존자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황야로 도망쳤으며, 곧 그들은 테오티우아칸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이제 엄청난 자연의 힘과 그것이 그들의 평범한 삶을 송두리채 파괴할 수 있음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이전과는 달리 신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그들의 새로운 터전인 테오티우아칸은 단순한 도시 그 이상이 되었으며, 자연의 힘에 대항하는 필사적인 피난처이자 신들의 보호를 받기 위해 지어진 곳이었습니다.
역사학자 에스더 파스토리는 피라미드가 그들의 고향을 파괴한 화산을 모방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믿습니다. 사제들이 신의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메소아메리카 전역으로 새로운 종교적 헌신의 질서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테오티우아칸에 정착한 난민들은 쿠이쿠일코에 있는 옛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열망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조상들이 고향이라고 불렀던 곳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들의 새로운 도시에 석상을 남겼습니다.
인간 희생을 수행
테오티우아칸의 신들은 피를 갈망했습니다. 그들이 아즈텍이나 마야의 신들과 모두 같은 신은 아니었고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지만, 테오티우아칸의 신들이 인간의 희생을 요구한다고 믿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태양의 피라미드 아래 터널에서 피라미드 건설 당시 희생 제물로 채워진 매장지 4곳이 발견되었습니다. 발견된 유해는 모두 성인은 아니었으며, 매장지 중 세 곳에서 신을 달래기 위해 희생된 죽은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피라미드의 새로운 층이 세워질 때마다 피비린내 나는 잔인한 희생 제물이 신에게 바쳐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태양의 피라미드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달의 피라미드 아래에 역시 머리가 없는 12구의 유해와 함께 다양한 야생 동물들이 묻혀 있었습니다.
태양의 피라미드 의식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 당시 사람들은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지 모르지만 피라미드만 놓고 보면 이것은 경이로운 건축물이었습니다.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두 개의 건축물이었으며 오늘날에도 태양의 피라미드는 여전히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피라미드입니다. 이 건축물은 태양이 태어났다고 믿었던 신성한 동굴 위에 세워졌습니다.
당시에는 꼭대기에 의식을 위한 제단이 있었지만, 어떤 의식이 있었는지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단순히 기도를 드렸을 수도 있고, 아즈텍인들처럼 사제들이 그곳에서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치뤘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테오티우아칸 엘리트들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옥 가면을 남겼습니다. 이 의식을 거행할 때는 도시에서 가장 권력 있는 사람들이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제사장들과 함께 녹색을 띠는 옥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참석했다고 합니다.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
기원전 100년경, 테오티우아칸은 몇 개의 주거지로 둘러싸인 사원에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전성기의 테오티우아칸은 인구가 20만 명에 육박하는 거대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테오티우아칸이 전성기를 누린 지 1,000여 년이 지난 1400년대까지 그 규모에 필적할 만한 도시는 없었습니다. 이 도시가 그토록 거대했던 이유는 이 지역 전체가 종교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라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도시의 모든 부분은 종교적 원칙에 따라 지어졌으며, 도시는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직사각형 격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죽은 자의 거리라고 불리는 거대한 도로가 도시를 가로지르며 사람들을 도시 중앙의 대피라미드로 안내했습니다.
피라미드가 건설된 후 도시는 호황을 누렸습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700여 년 동안 당시 사람들이 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다문화 도시
아즈텍인들은 전성기시절의 테오티우아칸에 누가 살았는지 알지 못했으며, 이 거대하고 놀라운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조차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들은 한 집단이 아니었을 수도 있으며, 전성기시절 테오티우아칸은 마치 고대 뉴욕과 같은 다문화 도시였던 것 같습니다. 도시의 각 지역은 마치 현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한인타운이나 리틀 이탈리아처럼 문화별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야인, 믹스텍인, 자포텍인으로 가득 찬 지역에는 각각 고유한 사원과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평등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 도시는 평민들을 빈민가에 머물게 하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신전을 세우고 자신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었지만, 테오티우아칸의 엘리트들이 거대한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의식을 치르는 보석과 옥으로 뒤덮인 도시의 중심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했을 수도 있습니다
테오티우아칸은 주변 부족이나 국가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습니다.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이 만든 제품은 전국 각지에서 거래되었고, 그들의 신념은 메소아메리카의 종교를 완전히 재편한 것으로 보입니다.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이 어떻게 주변 국가들을 지배할 수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그들의 놀라운 프로젝트에 경외심을 느꼈을 수도 있고, 칼을 겨누고 강요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테오티우아칸 곳곳의 벽화에는 한때 도시를 지키던 전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조개껍질 고글로 눈을 보호하고 깃털 머리 장식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손에는 던질 수 있는 다트를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전사들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도시에는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거대한 피라미드인 깃털달린 뱀의 사원이 있습니다. 이 피라미드는 전쟁의 신을 상징하는 깃털 뱀 조각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 피라미드가 완공되었을 때 200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손이 등 뒤로 묶인 채 건물 옆 구덩이에 묻혔습니다.
희생자들은 지역 주민이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 전쟁에 참전했다가 패배하거나 포로가 되어 죽임을 당하고 테오티우아칸 신전 아래에 묻힌 사람들로 추정됩니다.
도시 아래의 비밀 터널
태양의 신전과 깃털달린 뱀의 신전 아래에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은 메인 안뜰로 이어지는 길고 깊은 터널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신비한 목적으로 사용되던 비밀 장소로, 발견되기 전까지 수천 년 동안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깃털달린 뱀의 신전 기슭에 싱크홀이 생기면서 그곳이 드러났습니다. 사원에서 마당까지 약 100미터 길이의 싱크홀은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방을 통과해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습니다. 이 터널은 단순히 이동하는 데만 사용되지는 않았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장소였던 것 으로 추정됩니다. 십자가 모양의 방 안에는 정교한 목걸이, 인형, 도자기, 사람의 피부 등 제물이 남아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통로로 들어가는 길은 1,800년 전에 거대한 바위로 강제로 봉쇄되었습니다. 누군가가 통로로 들어가는 길을 폐쇄하고 다시는 아무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테오티우아칸의 몰락
아즈텍인들이 메소아메리카에 와서 테오티우아칸을 발견했을 때 도시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거대한 도시가 몰락할 수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오늘날 우리는 최선의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폭력적인 봉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750년경, 도시 외곽으로 쫓겨난 평민들이 엘리트층에 대항하여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이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닥쳤고, 그 여파로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은 도시 중심부를 습격하여 불태워 버렸으며, 엘리트층들이 소유하고 있던 거대한 정부 건물이 표적이 되어 예술품과 조각품이 파괴되었습니다.
도시가 함락되자 사람들은 떠났습니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했고, 새로운 마을을 기념하기 위해 인신공양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새로운 땅을 봉헌하기 위해 150명이 학살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살던 사람들이 서로 등을 돌리고 전쟁과 혼돈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의 종교를 모방한 아즈텍
평민들의 대규모 반란 이후, 거의 600년 동안 도시는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1300년대에 들어서 아즈텍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들은 정글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도시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거대한 건물을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들이 테오티우아칸과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상상할 수 없었던 아즈텍인들은 이곳이 신들의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곳이 신들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곳이라고 믿었습니다. 아즈텍인들에게 있어 이곳 테오티우아칸은 바로 신들이 세상을 창조한 장소였습니다.
아즈텍인들은 그곳에 남겨진 신앙과 관련된 지식을 통해서 그들만의 종교를 만들었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테오티우아칸의 사람들처럼 아즈텍인들도 케찰코아틀이라고 불리는 깃털달린 뱀을 숭배했으며, 과거 테오티우아칸에서 만들어진 피라미드를 모방했습니다. 또한 과거의 인신공양의 관습을 따랐고, 대도시에서 발견한 유물을 집으로 가져가 신성한 유물로 여겼습니다.
마지막 사람이 테오티우아칸을 떠난 지 600여 년이 지났지만 그 영향력은 아즈텍 문명을 넘어서 여전히 현재까지 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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